강박증으로 힘든 분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있습니다.
“저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문을 잠갔다는 것도 압니다. 손을 충분히 씻었다는 것도 압니다. 내가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마음에서는 계속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확실해?” “뭔가 놓친 것 같은데.”
모른다면 배우면 될 것 같은데, 이미 알고 있는데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더 답답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높은 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어도 난간 가까이에 서면 다리가 떨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안전하다는 통계를 알고 있어도 비행기를 타는 순간 심장이 뛰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포영화가 연출이라는 것을 알아도 갑자기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몸은 먼저 놀랍니다.
머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몸과 마음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강박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이건 너무 과한 걱정이야”라고 알고 있지만,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에서는 “그래도 위험할 수 있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설명을 위해 두 마음을 나누어보겠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두 영역을 구분해서 표현해보겠습니다.
하나는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나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괜찮다.” “지금 내 반응이 지나치다.” “또 강박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입니다. 위험하다고 느끼면 몸을 긴장시키고 불안을 만들고, 빨리 확인하거나 피하라고 압박합니다.
저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이 자동적인 영역을 무의식적인 마음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실제로 마음이 물리적으로 둘로 나뉘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치료적인 관점에서 ‘이미 알고 있는 나’와 ‘아직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코끼리와 기수를 생각해보세요
커다란 코끼리 위에 작은 기수가 올라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기수는 길을 알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은 코끼리가 훨씬 셉니다.
평소에는 기수가 방향을 잡으면서 잘 갈 수 있지만, 갑자기 코끼리가 무언가를 보고 크게 놀라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면 기수의 말만으로 바로 멈추기는 어렵습니다.
강박이 심하게 올라오는 순간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성적인 나는 압니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돼.”
그런데 마음에서는 엄청난 불안이 올라옵니다.
“안 돼.” “확인해야 해.” “이대로 넘어가면 큰일 날 것 같아.”
이때 질문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몰라서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이 아직 다른 것을 믿고 있는 것일까?”
강박의 핵심은 ‘정보 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을 잠갔는지 걱정하는 사람이 한 번 확인합니다. 분명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다시 묻습니다.
“제대로 본 거 맞아?”
다시 확인합니다. 또 잠겨 있습니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혹시 확인한 뒤에 내가 다시 열었던 것은 아닐까?”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면 확인할수록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강박에서는 오히려 확인해야 할 질문이 계속 늘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중심이 정보 자체보다 그 정보를 마음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맞는 말인 건 알겠는데 마음이 안 놓여요”라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강박을 이겨내는 목표도 달라져야 합니다
강박 치료의 목표를 “강박적인 생각이 다시는 안 떠오르게 만드는 것”으로 잡으면 계속 생각을 감시하게 됩니다.
“오늘은 몇 번 떠올랐지?” “왜 아직도 이런 생각이 생기지?” “치료가 안 되고 있는 건가?”
그러면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강박적인 생각이나 불안이 올라오더라도, 강박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마음이 배워가는 것.
처음에는 마음이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확인을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씻지 않으면 계속 찝찝할 것 같은데.” “이 생각을 그냥 두면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불안했지만 확인하지 않고 지나갔다.” “찝찝했지만 바로 해결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생각 자체와 싸우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마음도 조금씩 새로운 정보를 배우게 됩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스스로에게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이건 강박이야”라고 말한다고 마음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만 반복하다 보면 “괜찮다는 확신을 얻어야만 넘어갈 수 있어”라는 새로운 안심 확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마음을 매번 설득해서 불안을 완전히 없앤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직 불안해하고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옳다고 판단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강의 요약
강박이 올라왔을 때 “나는 다 아는데 왜 이것도 못해?”라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내 자동적인 마음이 아직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 새로운 경험을 통해 천천히 다시 가르쳐야 한다.”
다음 강에서는 마음이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왜 확인하고 씻을수록 마음이 더 위험하다고 믿게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이 글은 강박증의 원리와 대응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교육 자료입니다. 개인의 진단이나 의학적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